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리투아니아 관계 (문단 편집) ==== 중근세 ==== 과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폴란드 왕국]]과 [[동군연합]]만 이루고 같이 연방을 이루기 전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키예프 대공국]]을 계승했다는 의식이 강했다. 이는 당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과거 키예프 공국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현지인들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15세기 중반까지 리투아니아의 연대기 작가들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이야말로 키예프 공국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입장에서 연대기를 저술하였다. 리투아니아 전성기를 이끈 [[비타우타스 대공]]은 모스크바 대공국과 전쟁을 벌여 1404년부로 [[스몰렌스크]]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인]]이 크레보 연합에 결과 가톨릭으로 대거 개종하면서 정교회 국가였던 키예프 루스 그리고 정교회를 신앙하는 루테니아인들을 계승했다 주장하는데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이반 3세]]의 [[모스크바 대공국]] 사이에서 1500년 대대적인 전쟁이 벌어지는데 결국 1503년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모스크바 대공국 측과 조약을 맺고 비타우타스가 전쟁에서 얻은 동부 영토 거의 전부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16세기 이후 리투아니아와 모스크바 대공국 사이의 상호 적대감이 심화되면서 리투아니아가 키예프 공국을 계승한다는 의식은 사라지고 [[리투아니아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대 [[로마 제국]]과 [[가톨릭]]에서 찾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법전에서도 반영되는데 1529년 편찬된 기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법률을 집대성한 "리투아니아 기본법"은 키예프 루스 시대부터 보존되어 왔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여러 지역의 옛 법률 중 많은 것이 담겨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1566년 리투아니아 기본법의 개정판은 폴란드와 독일 방식을 따라 크게 변형되었으며,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국가 구조와 운영 방식에서도 폴란드를 모범으로 하여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속한 여러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고 스몰렌스크 등 오늘날의 러시아에 속하는 지역 등등 여러 지역의 체제는 많은 차별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루블린 조약]] 이후에는 이러한 개별적 특징들도 파괴되거나 평준화되어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